슬럼프라고??
그래, 자네가 요즘 슬럼프라고? 나태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기가 어렵다고? 그런 날들이 하루이틀 계속되면서 이제는 스스로가 미워질만큼, 그런 독한 슬럼프에 빠져있다고? 우선 하나 말해 두지, 나는 슬럼프란 말을 쓰지 않아, 대신 그냥 ‘게으름’이란 말을 쓰지. 슬럼프, 라고 표현하면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지금부턴 그냥 게으름 또는 나태라고 할께. 난 나태란 관성의 문제라고 생각해. 자전거는 올라타서 첫페달 밟을 때까지가 제일 힘들지. 컴퓨터 켜기도, 자동차 시동걸기도, 사는 것도 마찬가지야. 정지상태를 깨는 첫 힘을 쏟는 모멘텀을 줄 의지가 관성이 치여버리는 현상... 난 그것이 자네가 말하는 ‘슬럼프’의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해. 근데, 문제는 말야, 나태한 자신이 싫어진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게으른 일상에 익숙해져서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실은 자네도 슬럼프를, 아니 오랜만의 연속된 나태를, 지금 즐기고 있는 거라면 이 글을 여기까지만 읽어. 딱 여기까지만 읽을 사람을 위해 덕담까지 한 마디 해줄게. “슬럼프란 더 생산적인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간이다.” 하지만, 위에 쓴 덕담은 거짓말이야. 너무 오래 나태하면 안돼. 자아가 부패하거든, 그러면 네 아름다운 육신과 영혼이 슬퍼지거든, 그러면 너무 아깝거든. 그러니까, ‘정말’ 슬럼프, 아니 나태에서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각오해. 그리고 이 다음을 읽어. 보통 ‘슬럼프’ 상태에서는 정신이 확 드는 외부적 자극이 자신을 다시 바로 잡아주기를 기다리게 되거든? 어떤 강력한 사건의 발생이나, 친구/선배의 따끔한 한 마디, 혹은 폭음 후 새벽 숙취 속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라도… 그런 걸 느낄 때까지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자학을 유보하거든? 땍!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그런 자극은 없어, 아니면 늘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이란 말야. 그 자극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생활의 실천으로 옮기는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그런 자극이 백번 있어도 아무 소용 없단 말야. 정말 나태에서 벗어날 참이면 코끝에 스치는 바람에도 삶의 의욕을 찾고, 그러지 않을 참이면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늘 같은 상태라니까?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어? '정말로' 원한다면 해결은 생각보다 쉬워. '오늘' 해결하면 되. 늘 '오늘'이 중요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뭐 이런 차원이 아니야. 그냥 오늘 자전거의 첫페달을 밟고 그걸로 만족하면 되. 그런 오늘들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모이거든, 나태가 관성인 것처럼 분주함도 관성이 되거든. 내. 얘기가 길어졌지? 내가 늘 그래. 대신 긴 설교를 요약해 줄게. 일. 나태를 즐기지 마. 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마. 이.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을 해. 술 먹지 말고, 일찍 자. 삼.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해. 지금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야. 그럴거면 더 이상 칭얼대지 마. 사. (마지막이야 잘 들어?)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원이 천원 되겠어? 자학하지 마,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그거 알아? 모든 것은 흘러. 지나고 나면 이번 일도 무덤덤해 질거야. 하지만 말야, 그래도 이번 자네의 슬럼프는 좀 짧아지길 바래. 잘 자. (아니, 아직 자지 마. 오늘 할 일이 있었잖아?)
by sakukan | 2010/01/01 23:25 | 자극제 | 트랙백 | 덧글(0)
힘을 한 곳에 집중하면 어렵고 귀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위 말은 이번 책 사인회에서 제가 주로 썼던 말입니다.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내가 공부를 잘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불철주야 정진한 것은 고등학교 1-2학년 정도였고 고3 일부 정도였습니다. 2년 반 정도였습니다.

잘하게된 이유는 유전부터 시작하여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는 거의 모든 힘을 공부에 쏟았다는 것.

워낙 힘이 좋기도 했지만 그 힘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당시 저는 공부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머리가 좋아지는 호흡법, 속독법 등도 관심이 있었고, 배고픔을 참고 공부하는 호흡법도 익혔습니다. 자나깨나 공부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공부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펜팔로 이성친구와도 연락을 했고, 고 2때는 소개팅도 나갔고 일부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고3여름방학때 본격적인 연애질을 하다고 고3이후를 힘들게 보냈지만요. 하지만 대체로 고1초부터 고3 여름까지는 매우 성실하게 공부에 집중하였습니다. 그 외 다른 생활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하나 공부만 생각했지요.

 

그 짧은 기간 동안의 정진이 저를 서울대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3, 4학년때 공부 잘 한 것, 사시 두번째 도전에서 잘 한 것, 연수원 1년차 때 제법 잘 한 것 등의 시기를 돌아보면 늘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생활들을 접고 공부 하나만 생각하고, 모든 힘을 공부에 쏟은 것입니다.

마치 싸움을 하는데 몸의 모든 힘을 오른 주먹 하나에 집중하고 그 주먹으로 상대를 가격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잘 하면 그 주먹 하나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도 있습니다. 몸 전체의 힘은 상대보다 못하지만 힘을 주먹에 집중하면 어떤 상대도 거꾸러 뜨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먹에는 온 몸의 기, 에너지가 실려있기 때문입니다.

 

좀 많이 가진 사람이 공부에 그 중 적정한 양을 쓰는 것과, 많지는 않진만 가진 모든 것을 공부에 쏟는 것을 볼 때 어느 것이 양이 많을까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든 것을 공부에 쏟는다면 웬만한 경쟁자들은 다 물리칠 수 있습니다. 경쟁은 그렇게 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좀 부족하다 하더라도 내 힘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오로지 공부 하나(목표가 다른 것이라면 그것에)에 쏟아붓는 것입니다. 집중이지요. 그러면 결국 누가 많은 힘을 쏟느냐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데,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만약 그래도 안되는 경우라면(운이 모자라거나, 더 센놈이 역시 집중해서 들어올 수 도 있지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팔자려니 하고 미련없이, 기쁜 마음으로 물러날 수 있습니다. '내가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나 ㅎㅎ'라면서요. 아니면 '내가 좀 더 부족했구나. 다음에는 더 보충해서 더 낫게 해야지'라고요. 최선을 다한 다음 그 결과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늘 포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귀하고 어려운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가지려고 하면 귀한 것은 얻을 수 없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나면, 그 목표를 얻을 때까지는 나머지는 다 포기해야 합니다. 건강 하나만 남겨두고요. 건강은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하니까요. 그런 집중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가 끝난 이후, 일을 할 때에도 역시 집중이 필요합니다. 유명한 야구선수 이치로가 그렇게 대단하게 되기까지는, 야구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타이거우즈, 호나우두 등 최고들이 일도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노력량이 부족하면 지니까요.

 

이산 저산 오르지 말고 한 산을 정해 올라가세요. 그래야 높이 올라갑니다. 높이 올라가면 좋지요.

 
출처: http://cafe.daum.net/pass50?t__nil_cafemy=item 최규호 불피법

by sakukan | 2010/01/01 23:13 | 자극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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